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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후감(군주론, 인간관계론, 행복론)

군주론-12 (페르모에서의 올리베로토의 배신)

by cchhbb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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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12 페르모에서의

페르모에서의 올리베로토의 배신

알렉산데르 6세가 교황으로 재위했던 우리 시대에 페르모의 올리베로토는 부친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외삼촌인 조반니 폴리아니에 의해서 양육되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그는 군무를 익혀 출세할 목적으로 파올로 비텔라에게 보내져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파올로가 처형되자, 그는 파올로의 동생인 비텔르초 밑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영리하고 심신의 활력이 넘쳐 단시일 내에 비텔로초가 통솔하는 군대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휘하에 있는 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텔로초의 지원과, 조국의 자유보다 노예상태를 원하는 페르모의 일부 시민들의 도움으로 페르모의 권력을 장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숙부인 조반니 폴리아나에게 편지를 써서 오랫동안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돌아가서 숙부와 조국을 보고 싶으며 자신의 유산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가 그동안 노력한 이유는 오직 명예를 얻어서 그의 동료 시민들에게 그가 허송세월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방법으로 곧 그의 친구들과 부하들 중에서 선발한 100명의 기병을 인솔하여 귀환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서 그는 조반니에게 페르모의 시민들이 그를 적절한 예우로 영접하도록 주선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는 단순히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양육한 조반니 자신에게도 명예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조반니는 자기 조카를 정성을 다하여 최대한의 예우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 역시 올리베로토를 정중하게 맞이했습니다. 그 후 그는 조반니의 저택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계획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며칠 동안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비밀리에 마친 다음 공식 연회를 열었으며, 연회에 조반니 폴리아니와 페르모의 저명한 시민들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연회와 그런 행사에 으레 따르는 여흥이 끝난 후, 올리베로토는 알렉산데르 교황 및 그의 아들 체사레의 막강한 권력과 다양한 업적들을 이야기하면서 짐짓 심각한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조반니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관해서 대꾸하자, 그는 별안간 일어나서 그런 문제는 좀 더 은밀한 장소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병실로 들어갔고, 조반니와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숨어 있던 올리베로토의 병사들이 튀어나와 조반니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참살을 자행한 후, 올리베로토는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도시를 장악했고, 주요 관리들의 집들을 포위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겁에 질려서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그 스스로 군주가 되었습니다.

 

올리베로토의 성공

자신을 가해할 만한 모든 저항세력을 제거한 후, 올리베로토는 새로운 민정과 군제를 통해서 권력을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지 1년 만에 페르모 시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접 국가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르시니 파의 지도자들과 비텔로초 비텔리가 시니갈리아에서 사로잡혔을 때 올리베로토 역시 체사레 보르자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올리베로토를 축출하는 것은 아가토 클레스를 축출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삼촌을 죽인 후 1년 만에 올리베로토 역시 그곳에서 체포되었으며, 역량에 있어서든 악행에 있어서든 매사에 그의 신생이었던 비텔로초와 함께 교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신중하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

아가토클레스나 그와 같은 다른 인물들이 수없이 많은 배신과 잔인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어떻게 해서 자신의 나라를 안전하게 오랫동안 통치하고 외적을 잘 방어함은 물론 시민들의 음모에도 걸려들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의아스럽게 생각할 사람들이 의당 있을 법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다른 지배자들이 잔인한 짓을 저지른 경우에, 언제나 불확실한 상황인 전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시에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해행위는 단번에, 시혜 행위는 천천히

저는 이러한 차이가 잔인한 조치들이 잘 이루어졌는가 또는 잘못 이루어졌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조치들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거에 모두 저질러진 것을 말하며, 연후에는 지속되지 않고 자신의 신민들에게 가능한 한 유익한 조치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인한 조치들이 잘못 이루어졌다는 것은 처음에는 빈도가 낮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첫 번째 방법을 따르는 군주들은, 아가토클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신과 인간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몇몇 수단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을 따르는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복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한 후에 그가 저지를 필요가 잇는 모든 가해행위에 관해서 결정해야 하며, 모든 가해행위를 일거에 저질러서 매일 되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절제를 통해서 민심을 수습하고, 시혜를 베풀어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소심하거나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손에 항상 칼을 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결코 신민들을 믿고 의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가해행위로 인해서 신민들이 결코 그에게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평온한 시절에 역경에 대비한다.

그리고 군주는 무엇보다도 그의 신민들과 함께 살아야 하며, 그러면 좋건 나쁘건 우발적인 사태로 인해서 자신의 행위를 수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상시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할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군주가 베푼 어떠한 은혜도 군주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마지못해 베푼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아무런 믿음도 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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