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군주의 모델로서의 공작
이제 공작의 모든 활동을 검토해볼 때, 나는 그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위에서 쓴 바와 같이, 타인의 호의와 무력에 의해서 권력을 차지한 모든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큰 뜻과 야망을 품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밖에 달리 행동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두 가지 사태가 그의 기도를 좌절시켰는데, 곧 부친의 단명과 자신의 병환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생 군주국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군주는 다른 누구보다도 공작의 행적에서 그 생생한 모범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 동맹을 맺는 것, 정복하는 것, 인민들로부터 충성과 공포심을 확보하는 것, 군대로부터 복종과 존경을 확보하는 것, 당신에게 해를 가하거나 가할 수 있는 자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말살하는 것, 낡은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개혁하는 것, 엄격하면서도 친절하고 고결하면서도 관대하게 처세하는 것, 불충한 군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것 그리고 왕이나 다른 지배자들과 동맹을 맺어 그들이 기꺼이 전하에게 호의를 베풀게 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재주를 공작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체사레의 유일한 대실수 : 피해를 준 적이 있는 자들을 신뢰하지 말라
만약 공작의 실수를 비판할 수 있다면, 오직 교황 율리우스의 선출에 관한 일인데, 그는 정말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가 비록 자신이 선호하는 인물을 교황으로 옹립할 수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반대하는 인물이 선출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자신이 피해를 준 적이 있거나, 일단 교황이 되면 자신을 두려워할 만한 추기경이 선출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자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들 중에서 그가 과거에 피해를 입힌 적이 있는 인물은 산 피에르 아드 빈쿨라, 콜론나, 산 조르조 그리고 아스카니오였습니다. 그 밖의 다른 추기경들도 교황이 되면 그를 두려워했을 인물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루앙의 추기경과 스페인 출신의 추기경만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공작은 무엇보다도 스페인 출신 추기경을 교황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산 피에르 아드 빈쿨라가 아니라 루앙의 추기경이 선출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풂으로써 과거에 입은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작은 이 선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셈이었으며, 이로 인해서 파멸을 자초했습니다.
제8장
사악한 방법을 사용하여 군주가 된 인물들
일개 시민에서 군주가 되는 두 가지 방법
군주가 되는 방법에는 다른 두 가지가 더 있는데, 이 방법들은 전적으로 운명이나 역량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논의에서 생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는 공화국을 다룰 때 상세하게 논의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두 방법은 일개 시민이 전적으로 사악한 수단들을 사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과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통치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이제 첫 번째 방법을 검토하면서, 저는 고대와 현재로부터 두 가지 사례를 들겠는데, 이런 식으로 권력을 잡는 방법의 장점을 직접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을 따를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개의 사례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입니다.
아가토클레스의 성공
시라쿠사의 왕이 되었던 시칠리아의 아카토클레스는 평민 출신으로, 그것도 아주 미천하고 영락한 가문의 태생이었습니다. 그는 도공의 아들로서 항상 방탕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악행에도 불구하고 심신의 기백이 넘쳤기 때문에 군대에 들어가서 모든 단계를 거쳐서 결국은 시라쿠사 군대의 사령관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 지위를 확보한 후 그는 군주가 되기로,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무력을 사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에서 전투를 수행 중이던 카르타고인 하밀카르와 음모를 꾸몄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공화국의 중대한 일을 결정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시라쿠사의 인민들과 원로원을 소집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다음에, 약속된 신호에 따라서 그의 군인들이 모든 의원들과 그 도시의 부유층 인물들을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참사를 저지른 후 그는 도시를 장악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통치했습니다.
비록 그는 두 번이나 카르타고인들에게 패했고, 급기야는 그들에게 포위공격을 당했지만, 포위된 도시를 방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방어를 위한 군대의 일부를 남겨둔 채,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아프리카 본토를 공격했습니다. 그리하여 단순에 시라쿠사를 카르타고 인들의 포위에서 구하고,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그와 협정을 맺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아프리카 본토에만 만족하고 그곳으로 철수하게 되었고, 시칠리아를 아가토클레스에게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사악함으로는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아가토클레스의 행적과 생애를 검토해보면, 그의 성공에 운명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거나 아주 조그만 역할만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군대에서 승진하여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대담하고 위험이 따르는 많은 결정들을 통해서 유지하는 데에 어느 누구의 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갖은 난관과 위험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가토클레스가 대담하게 위기에 맞서고 그 위기를 타개하면서 보여준 역량과, 곤경을 참고 극복하면서 발휘한 불굴의 의지를 고려한다면, 그는 그 어떤 유능한 장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끔찍하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 그리고 수없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서 그는 훌륭한 인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성취한 것을 운명이나 역량 중 어느 하나에 의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후감(군주론, 인간관계론, 행복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주론-13 ( 시민형 군주국) (0) | 2022.11.03 |
---|---|
군주론-12 (페르모에서의 올리베로토의 배신) (0) | 2022.11.03 |
군주론-10 (로마냐의 평화) (0) | 2022.11.01 |
군주론-9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0) | 2022.10.31 |
군주론-8 (새로운 제도의 도입) (0) | 2022.10.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