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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후감(군주론, 인간관계론, 행복론)

군주론-6 (투르크와 프랑스의 사례)

by cchhbb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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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론6 투르크와 프랑스

우리 시대에 이러한 두 가지 통치 유형의 사례는

투르크의 술탄과 프랑스의 왕입니다.

 

투르크 왕국 전체는 한 사람의 군주에 의해서 지배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가신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왕국은 산자크라는 행정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술탄은 각 지역에 다양한 행정관들을 파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그들을 교체하거나 이동시킵니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수많은 세습 제후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제후 들은 각 지역에서 자신들을 인정하고 자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신민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제후들은 각각의 고유한 세습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권은 왕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 두 유형의 국가를 비교, 고찰하면, 투르크 유형의 국가는 정복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정복하면 유지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반면에,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몇 가지 점에서 정복하기가 더 쉽지만,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투르크 : 정복하기는 어려우나 유지하기는 쉽다.

투르크 왕국을 정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첫째, 그 왕국의 신하들이 외국에 도움을 청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지배자 주위의 신하들이, 이미 언급한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외세의 침입을 용이하게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족들이 모두 지배자의 종복들이고 그의 은혜를 입어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들을 타락시키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주민들이 이미 언급한 이유들로 귀족들을 추종하지 않기 때문에 별 이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투르크의 술탄을 공격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의당 적이 일치단결하여 대항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자신의 군대를 신뢰해야지 적의 분열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약 전장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어 적에게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면, 이제는 군주의 가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두려워할 어떠한 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군주의 가문을 단절시켜버리면 두려워할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되는데,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인민들의 신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복자가 자신의 승리 이전에 그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 후에는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프랑스 : 정복하기는 쉬우나 유지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처럼 지배되는 왕국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그것에는 항상 불만을 품은 세력과 정권을 전복하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 왕국의 일부 제후들과 결탁함으로써 쉽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제시한 이유로 인해서 그들은 그 나라로 향하는 길을 당신에게 열어줄 것이며, 승리를 얻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당신이 획득한 것을 지키려고 할 때, 당신은 당신을 도운 무리들과 당신의 침략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한 자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시련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반란의 주모자가 되려고 하는 귀족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군주 가문의 혈통을 단절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로 당신은 그들을 만족시킬 수도 파멸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나 그 나라를 잃게 될 것입니다.

 

로마사에 나오는 비근한 사례

이제 다리우스 왕국의 정부 형태를 살펴보면, 투르크 왕국과 닮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정면돌파를 통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승리 후에 다리우스가 죽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앞에서 말한 이유에 따라서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일치단결했더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순조롭게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왕국에서 일어난 분규란 단지 그들 자신의 소행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같이 조직된 국가를 그와 같이 순탄하게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 점이 스페인, 프랑스와 그리스 지역에서 로마에 대한 반란이 빈발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나라들에는 많은 군주국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군주국들에 대한 기억이 지속되는 한, 로마인들은 이 영토들의 확보를 결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의 지배가 오래 지속되어 그 기억이 퇴색되었을 때, 이들 지역에 대한 로마인들의 지배는 확고해졌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나중에 자중지란에 빠졌을 때, 파벌의 각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들에서 획득한 권위에 따라서 그 지역들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들에서 과거 지배자들의 혈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들은 로마인들의 권위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상이한 나라들과 상이한 문제들

위의 모든 사실들을 감안한다면, 한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지배를 용이하게 유지했던 사실과, 다른 한편 피로스나 기타 여러 지배자들이 정복지를 매우 어렵게 통치했다는 사실에 관해서 의아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상반된 결과는 정복자의 역량 여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복된 지역들의 특성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라가 집정관이 된 기원전 88년부터 옥타비아누스가 승리를 거둔 기원전 30년까지의 내전 기간을 말한다.

이피로스 왕국의 왕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인들에게 그리고 시칠리아에서는 카르타고 인들에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정복지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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